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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키17, 미키18, 봉준호 냄새가 난다. 영화 리뷰

by Dano Park 2025. 3. 15.

영화 미카 17 포토 카드

미키18, 미키1?

영화 "미키 17"은 "복제 인간"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미키는 영화 주인공 "미키 반스"의 이름이다. 이름 옆에 있는 숫자는 미키가 재생된 횟수를 의미한다. 17이라는 숫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미키가 17번째 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도의 기술이 발전한 시대의 미키는 친구와 함께 시작했던 마카롱 가게가 망하면서 사채업자들에게 쫓기게 된다. 그러다 목숨을 부재하고 사채업자가 있는 지구를 떠나려 한다. 미키는 마카롱 사업을 함께한 "티모"라는 친구와 다르게 변변한 기술이나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한 프로젝트에 참여를 하게 된다. 이 프로젝트에 동의를 하면서 미키의 기억은 백업이 되고 몸을 복제해서 프린트 할 수 있는 장치를 통해 미키는 죽을 때 마다 몸이 재생되고 프린가 되어 나온 재생 된 몸에 백업한 기억을 적용하며 죽음을 반복하며 계속 태어난다. 영화 미키 17에 고질적으로 나오는 대사가 있다. "미키, 죽을 때 기분은 어때?" 충분히 궁금할 수 있는 질문이다.

 

미키는 자신이 죽었던 기억까지 고스란히 가지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반복한다. 하지만 변변한 기술이나 능력이 없던 미키에게는 이 반복되는 복제 프린트는 극한 직업이다. 우주 방사능에 노출되기 새로운 행성에 외부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등. 죽음을 늘 감소해야 하는 작업에는 미키가 투입이 된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미키의 재생이나 반복되는 삶에 대해서 막연히 좋다고 느꼈었는데, 영화를 시청하고 난 이후에는 많은 질문과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방식이 전형적인 "봉준호 감독님"만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일생을 살고 삶을 마치고 다시 삶을 얻으며 새로운 삶을 산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미키의 경우는 온전히 직업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고통을 매번 기억하고 고통을 느끼고 다시 재생된 몸에서 눈을 뜨고 다음 생을 살아가지만 경우에 따라 아주 짧은 삶을 살기도 한다. 바이러스와 갖은 실험으로 인해서 수많은 미키 13,14,15,16이 희생되었다. 다음은 미키 17이다. 미키 17은 인류가 새로 정착할 행성에서 사고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미키 18이 복제되어 태어난다. 영화 사건의 발단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미키 17이 죽지 않은 것이다. 동시에 미키는 2명이 된다.

 

미키 17은 순한 버전이고 미키 18은 아주 거친 스타일 버젼이다. 2명의 미키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미키 17의 세계관 안에서는 이것을 "멀티플" 이라고 부른다. 이전 버젼과 이후 버젼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인데, 미키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법적으로 인류애나 다른 법적 조치나 기타 여러 사항에 의해 통과되지 않았고 미키가 참여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마샬"에 의해서만 유일하게 통과된 법안이었다. 따라서 동시에 같은 인물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영화에서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까칠하고 터프한 미키 18 그리고 순진하고 착한 미키 17,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미키 18의 반전 이외에 미키의 다른 미키 1? 버전들에 대한 생각을 영화 미키 17에서 확인할 수 있다.

 

봉준호 냄새가 난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 "미키 17"은 한국의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다. 봉감독님과 미키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의 조합을 볼 수 있는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배우이다. 배우는 기억하기 싫어할 테지만 제일 먼저 머리에 각인시킨 작품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이다. 이후 나에게 가장 인상 깊고 묵직하고 인상 깊은 작품은 "더 배트맨"이었다. 사회에 가득 찬 분노와 어둡고 짙은 배트맨만의 느낌을 그만의 느낌으로 재해색한 것을 난 좋아한다. 이 전에 "테넷"에서 역행 임무를 수행할 때의 연기도 매우 좋았다. 그런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의 놀라운 변화가 한번 더 이 영화에서 빛을 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영화 초반부부터 믿을 수 없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패틴슨의 목소리이다. 나도 영화를 본 지 지금 몇 시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확인해 보지 못했지만 미키라는 캐릭터를 위해서 자신만의 해석과 스타일로 캐릭터를 구상한 듯하다. 미키 17은 원작 소설이 있다.

 

그리고 숫자도 17번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님이 영화로 다시 만들었다는 느낌을 영화를 보는 동안 느꼈다. 봉준호 냄새가 난다. 봉준호 감독님의 냄새가 아주 강렬하게 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감독님의 스타일 느낄 수 있고, 이상하게 봉준호 감독님께서 만든 이전의 작품들도 조금씩 소환되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 미키 17에서 새로 적 착한 행성은 극한의 추위를 가지고 있는 행성이다. 그리고 미키가 이 극한직업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와 새로 정착하기 위해 찾은 행성의 극한 상황 등은 이전의 설국 열차와 기생충을 떠올리게 한다. 즉 계층 간의 구조에 대한 질문을 이번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던지는 질문이다. 그런데 또 사회에 대한 계층과 자원에 대한 이야기야 할 수 있고 이전 작품에서도 또 다뤘는데 이번에도 그런 결의 소재를 다룬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루한 감은 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다. 영화 "괴물" '옥자" "설국열차" "기생충" 등 같은 듯한 문제를 메시지로 영화에 담아 전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머릿속에 남고 흥행과 기록들이 만들어진 것을 본다면 영화 미키 17은 다르면서도 같은 질문을 한다. 영화를 시청한 입장에서 지루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청하는 관객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느낄 것은 분영하다. 봉준호 감독님을 사랑한다면 이번 영화가 반가울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장치가 이전 영화에서 본 장치와 같은 것을 발견항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봉준호 감독님의 이전 작품들의 종합본처럼 답습하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님과 로버트 패틴슨의 연출과 연기를 보고 싶다면 아쉽지 않게 영화를 봤다고 뽑을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다. 몇몇 장면들은 흥미로운 점도 있어서 이후에 좀 더 영화를 N차 관람해서 이야기를 좀 더 다뤄도 좋을 것 같다.

봉준호 감독님만의 미키 17을 영화관에서 퇴근 후 또는 주말에 시간을 내어 직접 관람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필요한 생각과 메시지를 늘 잘 담아내는 감독님이라는 생각이 들고 힘든 시기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삶에 대해 이 영화를 보며 함께 생각하기에 더 좋을 것이다.

 

영화 리뷰

전첵적인 영화의 느낌은 지루한 감은 없이 깔끔하고 담백하게 즐기고 영화를 관람하고 영화관을 나왔다.

하지만 새로운 느낌이 없었던 영화다.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을 본 팬이라면 알 수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얕게 즐기기에 영화는 다소 부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깊이감 있게 해석한다면 조금 더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은 관람하게 되면 괜히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왜 17이라는 숫자를 감독님은 선택했고 숫자를 더 나아가지 않고 17에 멈춰 섰을까 하는 것이다. 왜 꼭 17이었을까? 17에 의미를 부여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조금 흥미로운 점은 인류에 관한 것이었다. 미키가 먹는 식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퀄리티를 가지고 있다. 지금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 그 마저 잘못을 하게 되면 양이 준다.

인류가 지구를 떠나 새로운 땅을 찾는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영화 "아바타"에서도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 영화 미키 17에서는 크리처가 등장한다. 명명하기를 크리퍼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크리퍼는 행성에 거주하고 있는 생명체이고 이곳을 새로운 터전으로 삼기 위해서 침범한 것은 마샬의 전함이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던 그들의 터전을 침범한 것은 인류다. 새로운 자원과 환경을 찾아 떠난 여행의 종착지는 우리가 숨 쉴 수 없는 땅이거나 이미 그 행성에 또 다른 종족이 이미 살 고 있다. 새로운 땅을 찾아 이주하고 이주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에 대한 물음은 미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처음부터 미키는 죽음에 선에 놓여 있다. 미키는 본인의 죽음을 직감하지만 행성의 주인 크리퍼들은 미키를 구해준다. 그리고 영화 결말부에 크리퍼는 말한다. 왜 죽여애 하냐고. 사실 그것은 이유가 되지 못한다. 잘 살고 있는 거주자들을 제가하려는 대상의 목표를 세우고 크리퍼에게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 마샬이라는 존재의 올바름이 있는가? 그리고 생명의 생존의 여부를 우리에게 결정할 권한이 있는가? 그런 점에서 미키의 반복적인 죽음과 반복적인 희생이 인류에게 숨쉴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바이러스를 이기거나 적응할 수 있는 결과를 얻어내지만 한 사람의 희생과 생명에 결과 그리고 죽음이 가볍게 여겨지는 이 행위는 잔인하다고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미키의 죽음으로 우리는 수많은 질문을 멈출 수 없다. 미키 자체가 참여한 이 프로젝트와 직업 자체에 대한 생각을 영화를 관람하면서 많은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인간의 존업성과 생명 그리고 이에 작용하는 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좋았던 주말에 영화관에서 보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