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신앙
구세주는 만들어지는가? 구세주는 태어나는가? 영화 듄 세계 속 이들을 낙원으로 이끌 메시아는 누구인가? 처음 듄을 보았을 때. 어렵지 않지만 장대한 설명처럼 느껴져 영화를 즐기거나 따라가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차근차근 이해를 하기 시작하면 이것은 독자적이면서 새로운 세계관과 영화계의 확립을 세울 수 있는 작품이라고 느껴 쪘다. 여러 비슷한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듄은 확실하고 머릿속에 깊이 새길 수 있는 깊이감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 폴의 가문의 위기와 프레멘들과 생활 그리고 그들에게 전해지는 물을 나눠주고 세상을 구하는 전설적인 존재에 대한 언급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정말 운명인지 또는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폴은 그들이 말하는 존재에 가까이 서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여기서 마치 "만들어진 신앙"처럼 느껴지는 장명이 있었는데 영화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이것은 영화이지만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강했고 신념 그리고 신앙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그것이 지속이 되고 사람들이 동요하는지를 보게 되었다. 여기에 실리는 힘은 아주 강하고 사람들을 응집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결코 만들어진 신앙이 아닌 폴이 가진 자체적인 능력 그리고 시기 그들이 말하는 낙원으로 이끌게 해줄 인물 이것이 모두 동시에 맞았고 폴을 낙원으로 이끌 신앙적 존재로 추앙하게 된다. 단순히 신앙에서 그치는 것만이 아닌 구세주로 일컬어지는 폴이라면 폴의 어머니 또한 중요한 인물이라 여겨지고 대모로 추앙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일부는 폴의 어머니의 계획이며 이것을 이해하고 바라본다면 믿음이 어떻게 싹 틔고 신앙을 구축하고 만들어지게 되는지 전체적인 큰 틀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예언의 시작
리산 알 가입, 무앗딥 등. 이것을 폴을 지칭하고 그들이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물을 나누어 주고 아라키스 행성을 낙원으로 이끌 구세주를 말하는 것이다. 이미 이끌림과 머릿속에 그려지는 잔상과 꿈들로 예언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고 폴은 그것을 직감이라도 하듯 자신의 내린 결정을 따르며 꿈에서 본 잔상과 장면의 의미를 상기시키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북부와 남부로 나누어진 세계관에서 남부로 자신이 돌아가면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것이라 말하는 폴은 이것을 예언의 일부인 것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이 프레멘들이 말하는 구세주가 되기 위한 계획들을 치밀하게 쌓아가고 사막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나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사막에서 걷는 것을 배운다. 이어 사막의 모래 벌래 위에 올라타 위상을 보이며 자신이 이 어려운 일들의 종지부를 찍을 존재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다. 폴의 목소리에는 사람들을 압권 하는 절대적 힘이 실려 있으며 이 목소리를 통해 사람들을 아우르며 믿음이라는 결속을 만들어 자신이 공작가의 아들이며 낙원으로 이끌 존재라는 강한 인상을 심어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대가문의 마찰과 갈등과 우위를 정하고 메마른 아르키스 땅을 구원할 존재에 대한 예언이 현실로 이루어지려고 하고 있다. 난 실제로 예언이나 운명을 믿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과정의 일부를 보면서 폴 무엇딥을 믿는 자들이 어떻게 믿음이 생기고 그토록 열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분명 듄: 파트 2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자리매김할 수 있는 영화일 것이라는 강한 확신과 믿음을 느꼈다. 마치 실제로 아라키스 행성에서 폴의 일취월장 연설을 듣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예언의 시작은 폴로부터이고 그것이 정말 예언인지 운명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잘 짜인 시나리오처럼 모든 것이 폴의 계획이라고 해도 이야기가 시작된 이상 믿음은 갖는 것이 아니라 폴이 가지는 힘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배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연 폴은 예언처럼 낙원으로 이끌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보았던 암담한 미래와 황폐한 결말을 자신의 계획으로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빨리 다름 이야기를 보고 싶다.
영화리뷰
대가문, 공작 가문, 지하드, 운명과 예언, 낙원으로 이끄는 자, 사막 등. 이해하고 알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보이고 실제 가문과 아라키스의 위기를 느낄 만큼 이입되어 이 세계에 빠져들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원작 소설을 접해 보지 않았고 듄의 첫 번째 이야기를 보았을 때. 머리가 아팠다. 막대한 설명을 듣는 기분이기도 했지만 많은 분량이 아니지만 이러한 서사를 지닌 영화가 적지도 않았고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거부하는 느낌도 조금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듄의 세계를 이해하기보다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장벽 하나가 느껴져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쉽게 피로감이 사라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시작하면 반드시 그 이야기의 매듭을 지어야 하는 것이 내가 영화를 보고 즐기는 방식 중에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듄: 파트 2를 관람했다. 관람 이후는 놀라웠다. 왜냐하면 전편의 경우 지루한 감과 속도감이 없어 영화를 설명 위주로만 들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듄: 파트 2는 내가 원하던 것을 차례대로 보여주었다. 대가문들과의 싸움 그리고 사람들을 이끄는 폴의 독자적인 능력과 영화가 진행될수록 깊어지는 대사와 그 대사를 강렬하고 힘이 실려있게 아주 잘 전달받았다. 실제로 영화는 음향과 소리의 강세로 긴박감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언에서부터 그것의 진실이 어디까지인지의 여부는 이제 더 이상 중요치 않다. 필요하다면 운명도 역사도 폴은 계획적으로 그것을 실현시킬 인물로 나에게는 그려지기 때문이다. 아르키스를 구할 영웅이 될 수 있을지, 폴이 낙원으로 이끌지 아니면 야망을 채우는 새로운 지배적인 세력으로 성장할지 지켜봐야 할 부분이 될 것 같다. 어려운 운명과 예언에 맞서며 낙원으로 이끌 존재 그리고 아주 좁은 길 사이로 적은 가능성을 보고 그것을 쥐고 대가문들의 동의를 얻어낸 폴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